‘한복입은 남자’에서 장영실 역을 맡은 박은태 배우가 마지막 엔딩 넘버 ‘비차 Reprised’를 부르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



“보고 싶어, 저 별을. 닿고 싶어, 저 별에.” (‘떠나기 위해 존재하는’ 중에서)

조선을 떠나며 장영실은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 1막의 끝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그의 마음 속에서는 닿을 수 없는 별을 향해 날아오르려는 욕망과, 어찌할 수 없는 풍파 앞에서 삶을 이어가야 하는 한의 정서가 교차한다.
모바일릴게임포기하고 피하고 원망하며 시들어가기보다, 헛된 꿈일지라도 끝까지 날아보겠다는 선택. 창작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는 핍박받는 운명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지를 끝내 놓지 않았던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을 무대 위로 되살린다.
세종과 장영실의 일대기를 본격 사극 뮤지컬 형식으로 풀어낸 한국의 대표 뮤지컬 제작사 EMK의 신작 ‘한복 입은 바다이야기게임장 남자’는 이상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고은성, 신성록, 이규형, 박은태, 카이, 전동석 등 남성 뮤지컬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며 개막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작품은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인 방송국 PD 진석이 이탈리아 유학생 엘레나로부터 오래된 비망록 한 권을 건네받으며 시작된다. 비망 릴게임몰 록 속에는 다빈치의 비행기 도면과 유사한 조선 시대 비행 장치 ‘비차’의 설계 흔적과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의 원본 스케치가 담겨 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액자식 구조 속에서, 역사에서 사라진 장영실의 삶의 진실이 드러난다.



세종대왕 역을 맡은 신성록 배우가 바다이야기#릴게임 근정전 어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



공연의 1막은 조선을 배경으로 장영실의 유년기부터 노비 신분을 딛고 종3품 대호군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안여(임금이 타는 가마) 파손 사건 이후 몰락하기까지의 과정을 실제 역사 기록을 큰 흐름으로 삼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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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떠나야만 하는 장영실의 선택과 심정을 담은 1막 엔딩 넘버 ‘떠나기 위해 존재하는’이 끝난 뒤 객석에서 터져 나온 박수는, 사극 뮤지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절절한 한의 정서가 관객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한복 의상과 장엄하게 구현된 경복궁 근정전 무대, 전통 무예와 무용을 가미한 대규모 앙상블 군무는 조선의 아름다움을 우아하게 표현한다. 대취타와 밀양아리랑 등 한국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음악은 극의 예스러운 분위기에 기여한다. 이에 더해 무대 위에 재현된 자격루와 혼천의 등 장영실의 발명품이 흥미를 더했다.
완전한 픽션으로 전환되는 2막은 분위기를 급격히 바꾼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을 배경으로, 장영실이 로마 교황청에 도착해 교황과 대화를 나누고 어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이 돼 비차를 전파하는 상상이 본격화된다. 무대 위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천사상이 등장해, 조선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장영실이 당도했음을 위압적으로 드러낸다.



경복궁 근정전을 재현한 웅장한 세트. 조선시대 궁궐을 뮤지컬 무대에 맞게 표현해냈다. [EMK뮤지컬컴퍼니]



장영실이 유럽으로 건너가 르네상스 시기의 부흥에 기여했다는 설정은 파격적인 만큼 당혹감을 안기기도 한다. 더욱이 실제 장영실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조선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무게감 있게 전개되던 1막과 달리 유럽을 떠돌며 진행되는 2막의 서사는 다소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남긴다. 현대 시점에서 단순히 시기와 용도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르네상스 시대의 발명품이 장영실의 영향을 받았다는 강배와 진석의 분투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다만 낯선 땅에 남겨진 장영실이 고국을 향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2막의 하이라이트 넘버 ‘그리웁다’는, 위대한 발명가가 아닌 외로움과 상실 앞에 선 한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며 가벼워진 서사에 감정적 무게를 더한다. 세종과 진석을 오가는 이규형, 장영실과 강배를 연기한 고은성의 연기도 작품의 중심을 단단히 붙든다. 특히 고은성은 천진난만한 표정과 강력한 저음의 대비를 통해, 꿈과 체념 사이에서 흔들리는 장영실의 내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무대 배경에 사용된 LED는 근래 그 어떤 작품보다도 실제 세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시공간 전환을 효과적으로 돕는다.
논란의 여지를 안은 파격성에도 불구하고 ‘한복 입은 남자’를 관람한 관객들은 대체로 만족감을 표했다. 막이 내리면 객석을 포함한 극장 전체의 천장은 별자리 형태의 프로젝션 이미지로 채워진다. 관객들은 저마다 휴대전화를 꺼내 천장을 촬영하며 공연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에 남겼다. 장영실의 꿈을 상징해온 ‘별’의 이미지는 이 장면에서 무대 위를 넘어 극장 전체를 감싸며, 작품이 끝난 뒤에도 조용한 여운을 남긴다. 공연은 3월 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