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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2019년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무사히 끝났습니다. 지난했던 한미 간 관세 협상의 종지부를 찍었고 원자력 추진 잠수함 운용에 대한 미국의 동의를 얻는 동시에 한중관계 회복 분기점을 마련하는 등 작지 않은 성과들을 두둑히 챙겼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가 내심 고대했 상담센타 던 북미 정상 간 회동은 불발됐습니다. 경주를 향하는 내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애도 무위에 그쳤습니다. 암묵적인 핵 보유국 지위에 올라 미 대통령과 나란히 설 수 있었던 기회를 흘려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복기가 필요해 보입니다.
김정은을 불러내기 위한 트럼프의 유화 제스처는 집요했 통장대출사기 습니다.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자마자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 그들(북한)은 일종의 뉴클리어파워(Nuclear power·핵 보유 세력)"라고 추켜세웠습니다. 김정은으로선 트럼프와의 잠시 회동만으로도 미국의 '암묵적인 핵보유국 인정'이라는 외교적 효과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트럼프는 경주 도착 직전 "그가 만나고 싶다면 나는 한국에 집담보대출한도 있으니, 내가 거기(북한)로 갈 수도 있다"고도 했습니다. 평양 등으로 초청한다면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남측에서 월북해 회동하겠다는 얘깁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미 대통령의 방북이라는 초특급 외교 이벤트로 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파격적 회동 조건들이 날아들었지만 김정은은 끝내 '침묵'으로 거절을 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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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월 30일 부산 김해공군기지 의전실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김정은의 속내를 알 길은 없습니다. 다만 '그의 입장과 시선'에서 이번 디딤돌 회동 제의가 마뜩잖을 수밖에 없는 몇가지 이유를 유추해볼 수는 있습니다.
첫째, '미중 정상회담'입니다. 이번 경주 APEC 정상회의 최대 이벤트는 단연 트럼프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관세 담판이었습니다. 미중 간 담판이 깨지거나 회담 뒤 양국 간 갈등 수위가 오히려 높아질 경우도 김정은으로선 고려해봐야 할 대목입니다.
불과 한 달여 전인 지난 9월 베이징 톈안먼 광장 성루에 올라 중국, 러시아 정상과 나란히 서 3자 연대를 과시했던 김정은입니다. 만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두 패권국 간 갈등의 파고가 되레 치솟았다면? 김정은으로서 뒷배 시진핑이 트럼프와 으르렁댔는데, 트럼프와 따로 만나 "오랜만이다, 반갑다"며 정답게 회포를 풀 수 있을까요?
김천식 전 통일연구원장은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트럼프를 만나자면, 이에 대한 중국의 양해도 필요했을 텐데, 지금 상황에서 양해를 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합니다. 트럼프와의 잠깐 회동을 위해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기보다 간신히 마련한 북중러 연대를 당분간 유지하는 게 낫다는 게 김정은의 판단이었을 것이란 얘깁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둘째, 이번 경주 이벤트 자체가 남측 주도의 외교판이었던 점입니다. 북한은 이미 적대적 두 국가론을 앞세워 남측과의 대화를 전면 거부하고 있습니다. 반면 '경주 외교'는 한국이 주도하는 판이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앞서 제시했던 '피스 메이커'(미국)와 '페이스 메이커'(한국) 역할 분담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당부했습니다. 아울러 시진핑과의 회담에선 한반도 정국 변화를 위한 중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했습니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남측 지도자가 미중 두 강대국 지도자와 대북 구상을 주고받고 있는 장면 자체가 불쾌했을 것"이라며 "이런 외교 흐름에 북미 회동이라는 깜짝 선물을 내어줄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경주로 향하는 내내 계속된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는 트럼프의 구애도 정작 김정은으로선 '한국을 방문하는 김에 김정은도 한 번 보자'는 식의 성의 없는 제안으로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 실질적 성과 도출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회동 제안은 그야말로 '번개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의제를 설정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공식 회담이 아니라 역사적인 2019년 판문점 북미 회동을 재현해보자는 게 한국과 미국의 기대였습니다. 이미 6년 전 회동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트럼프의 '즉흥 외교 쇼'에 이용만 당한 꼴이 됐던 김정은이 또 속아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정부는 최근 "내년 3월"을 북미 정상 간 회동을 가능하게 할 분기점으로 다시 '점지'했습니다. 한반도 대화 정국 부활에 대한 정부 기대감이 '경주'에서 '내년 봄'으로 옮겨간 셈입니다. 경주에서 좌절된 '페이스 메이커'로서의 출전의 꿈이 이번에야 말로 이뤄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